국민 먹거리 원가를 건드린 사건
겪어보니 물가 문제는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들 때는 체감이 먼저 오고, 한 번 오른 가격은 좀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밀가루 담합 사건은 더 무겁게 읽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등 7개 제분사의 담합을 적발하고 총 6천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밀가루는 라면, 빵, 국수, 과자 같은 일상식품의 출발점이다. 원재료 하나가 흔들리면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내려온다. 지나고 보니 이런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기업끼리 가격을 맞췄다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이 매일 사 먹는 먹거리의 가격 구조를 왜곡했고, 그 왜곡이 오랜 기간 조용히 누적됐다는 데 있다.
6년 동안 이어진 가격과 물량의 짬짜미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7개 제분사는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을 담합했다. 큰 틀의 합의는 대표자급 회합에서, 세부 실행은 실무자급 회합에서 맞춰 나가는 방식이었다. 총 55회에 걸쳐 회합이 이뤄졌고, 대형 수요처와 중소형 수요처를 상대로 가격과 물량 배분을 나눠 조정한 정황이 확인됐다.
이 대목이 특히 씁쓸하다. 담합은 한 번의 실수로 끝나는 일탈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구조로 굳어졌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농심, 팔도, 풀무원 같은 대형 수요처를 대상으로는 공급가격과 물량을 조정하고, 전 거래처를 상대로는 공급가격 담합을 이어갔다. 숫자로 보면 24차례에 걸친 공동행위다. 현실로 보면, 시장을 나눠 가진 채 서로의 가격을 떠받치는 방식이었다.
공정위가 산정한 관련매출액은 약 5조6900억원 수준이다. 국내 B2B 밀가루 시장에서 이들 7개사는 2024년 기준 87.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사실상 과점 구조에서 벌어진 담합이니 파급력이 작을 수가 없다.
원가가 오를 때는 빠르게, 내릴 때는 느리게
이번 사건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가격 반영의 방향이었다. 원맥, 그러니까 밀가루의 원재료는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국제 원맥 시세가 오르던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는 원가 상승분을 빠르게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인상 폭과 시기를 맞췄다. 반대로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가격 인하를 최대한 늦췄다. 이런 방식은 시장 원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담합의 전형적인 얼굴이다.
공정위 설명에 따르면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과 비교했을 때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이 숫자는 그냥 통계가 아니다. 누군가의 식탁 위 비용이고, 누군가의 장부 위 부담이며, 또 누군가의 영업이익으로 이어진 결과다.
제분사별 최고치 ■■■■■■■■■■■■■■■■■■■■■■■■■■■■ 74%
이 정도면 가격 조정이 아니라 시장 통제에 가깝다. 밀가루를 비싸게 사들인 제빵·제과·제면업체는 결국 제품 가격을 다시 손볼 수밖에 없다. 라면값, 빵값, 과자값이 연쇄적으로 흔들리는 구조다. 소비자는 담합을 직접 본 적이 없어도 그 비용은 이미 지불하고 있었던 셈이다.
471억원 보조금 시기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더 무겁게 만드는 건 정부의 물가 안정 사업기간에도 담합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7개사는 471억원의 보조금을 지급받았는데, 그 시기에도 담합을 이어갔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나는 이런 장면에서 늘 같은 생각을 한다. 공적 지원은 시장을 버티게 하라고 주는 것이지, 편법으로 이익을 키우라고 주는 게 아니다.
공정위는 이번 사안을 중대한 법 위반으로 봤고, 그에 맞게 대응 수위를 높였다. 2006년에도 이미 밀가루 담합으로 제재를 받았던 업체들이 다시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점도 가볍지 않다. 한 번 적발되고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면, 그건 우발적 일탈이 아니라 습관화된 시장 질서의 왜곡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는 실효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을 회복하는 조치로서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시켰다.”
공정위가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부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다시 산정하라는 뜻이다. 이 조치는 2006년 밀가루 담합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적용되는 사례가 된다. 당시에도 가격 재결정명령 이후 약 5%의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단순한 과징금만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과징금보다 중요한 건 시장 신뢰의 복원이다
공정위는 7개 제분사에 대해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도록 하는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도 부과했다. 이런 조치는 겉으로 보면 행정 절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시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담합은 적발 순간보다 적발 이후가 더 중요하다. 다시는 같은 구조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장을 지켜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검찰 수사와도 맞물려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2020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5년에 걸친 밀가루 가격 변동 합의 혐의로 제분 7사 중 6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했다. 공정위와 검찰의 판단이 동시에 이어지는 흐름은, 이 사건이 단순한 행정 제재 수준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나고 보니 담합의 피해는 늘 뒤늦게 보인다. 물가가 오를 때는 원가 탓으로 설명되고, 가격이 안 내려갈 때는 시장 상황이라는 말로 덮인다. 하지만 이번처럼 구조와 반복이 드러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장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뒤에서 손을 맞대면,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와 자영업자에게 넘어간다.
이번 제재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공정한 경쟁은 착한 말로 유지되지 않는다. 강한 제재와 지속적인 감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밀가루 한 봉지의 가격을 둘러싼 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민 먹거리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문제다. 나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시장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 자유가 약자의 주머니를 털어 만드는 자유여서는 안 된다고.
